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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이 남길 수 있는 건 이름뿐이다

 

 

이북 출신 사업가·수집鎬… 2001년 100만파운드 기증
브리티시 뮤지엄에 한국관 탄 발목 잡혀… 우리 대기업·정부·국민이 나서야

 

 

한광호(韓光鎬)의 청춘은 남쪽을 향한 질주였다. 1923년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나 평남 강서에 살다 광복을 맞아 서울로 왔다. 홀로 내려온 그의 목표는 여느 월남 실향민과 같았다. '절치일인이 겸재 정선의 그림을 해외로 밀반출하는 걸 본 것이다. 그는 훗날 "야단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말이 수집가였지만 그의 숙명은 처음부터 속는 것이었다. 1만원짜리를 100만원 주고 사는 일이 허다했다.

바둑 하수(下手)가 수많은 자기 대마(大馬)가 도륙되는 참극을 목도한 후 고수(高도 어느덧 누구보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경지에 이르렀다. 비결은 한 가지, 발품을 파는다. 그러자 국보급 보물이 제 발로 걸어들어오기도 했다.

사업가로, 수집가로 살아온 한광호는 올 1월 '브리티시 뮤지엄(British um)'에서다. 누가 '대영(大英)'이라는 제국주의적 색채를 입혀 번역했는지는 궁금하지만 영국을 찾는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명소가 브리티시 뮤지엄이다. 기자는 1990년대에 한 번, 그리고 최근 거기에 다시 가봤다. 그 세월의 차이가 너

영국이 어마어마한 노이 관람기에 묻어 있다.

"우리 문화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 "초라하다" "속상하다" "보는 내내 짜증 났다"는 반응 일색이다. 나는 그것이 1980년대 이후 태어난 한국 젊은이들이 건국(建國)하고 산업손가락질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잘 입고 잘 먹고 좋은 집에서 자라온 세대의 눈에 초가집은 그야말로 초라해 보서 맨손으로 일군 쪽에선 그 어떤 고래 등 같은 기와집보다 자랑스러운 터전이다. 그것을 누가 감히 조롱할 수 있겠는가.

브리티시 뮤지엄에 '한국관'이 생긴 건 2001년이었다. 전에는 박물관 한쪽 복도에 정체불명의 기물(器物)이 '코리아'란 이름을 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한국관은 외형도 내실도 '국민주택형' 규모다.

                                                              /일러자

한광호가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한국관을 지을 생각을 한 것은 1968년이었다고 한다. 독일 구텐베르크박물관에서 지금 우리 관광객들처럼 "한국관이 중국·일본관보다 형편없다"고 느꼈다. 그는 '볼품없다'고 한탄한 뒤 발길을 돌리는 대신 작품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구텐베르크박물관의 반응이 영 시으로 돌렸다. 그로부터 30년 후 한광호는 마침내 브리티시 뮤지엄에 사재(私財) 100만파운드를 기증했고, 3년 뒤 지금 우리가 보는 한국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는 2차 기증을 추진했는데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의 법(法)이었다. 세금을 40%나 내면 누가 문화를 외국에 수출할 수 있겠느냐며 정부에 여러 번 얘기했지만 하회(下回)는 모두가 상
브리티시 뮤지엄의 한국관은 최근 생긴 게 아니다. 그런데 그것과 관련된 이엄 지하 수장고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잠들어 있는 유물과 같은 처지다. 이 비화가 알려졌다면 한 개인의 집념이 '초라하다'는 한마디로 폄하되진 않을 것이다. 겉만 보고 판단부터 내리는, 분석이 예리한 게못할망정 항상 방해만 놓는가" "차라리 기업을 기댈 게 아니라 국민이 나서 보자"는 발전적 논의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해보는 것이다.

자료로만 본 한광호의 족적을 되짚으며 얻은 한 가지 교훈이 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진실임을 믿게 된 것이다. 그러자 프리미어리그 소속팀 유니폼에 자기 회사 이름을 넣기 위해 돈을 쓴다는 대기업보다 이름도 생소한 농약회사를 세운 그가 더 위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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