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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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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은행보다 경비 허술해
'절규' 절도범 "형편없는 보안 고마워"
엄청난 가격 비해 운반·은폐 쉬워
마약 등 불법 거래 때 돈 대신 쓰여
미국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드 가드너 박물관 곳곳에는 빈 액자가 걸려 있다. 1990년 3월 18일 도난당한 작품의 자리다. 경찰 제복을 입은 범인은 경비원을 포박한 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콘서트’ 작품 13점을 훔쳐갔다. 작품의 가치는 총 5억 달러(약 5113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작품과 범인의 행방은 지금까지 오리무중이다. 2011년 미국 휴스턴의 한 개인집에서는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 ‘머리에 꽃을 꽂고 팔에 기댄 마들렌’(1918)이 털렸다. 가치는 100만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다른 도난 미술품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 않기 때문에 미술품 헌터의 사냥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유명한 작품보다는 좀 저렴리하기 때문이다.
미술품을 훔치는 이유는 ‘먹는 건 전통적인 수법이다. 요즘 도난 미술품은 다른 용도로도 많이 쓰인다. 바로 돈세탁이나 마약, 무기 등의 불법 거래에 담보물로 활용된다. 장물 미술품을 ‘지하 세계의 화폐’로 부르는 이유다. 86년 베르메르의 작품을 훔친 도둑 마틴 카힐은 그림을 담보로 선금을 받은 뒤 마약 밀수 자금을 세탁하는 은행을 차렸다. 2000년 범그림 63점을 발견했다. 마약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미술품을 훔쳐 담보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장인 샌디 네언이 쓴 『미술품 잔혹사(Art Theft)』에 따르면 전 세계 도난 미술품과 골동품 시장의 규모는 연간 50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도둑들이 미술품을 노리는 건 상대적으로 훔치기 쉬워서다. 은행이나 보석 전문점 등을 터는 것보다 쉽다. 94년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도둑이 들었다. 범인들은 사다리를 타고 미술관 외벽에 올라 창을 깬 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1893)를 훔쳐갔다. 도둑들은 ‘형편없는 보안 상태에 감사할 따름’이란 메모를 남겼다. 아일랜드 러스버로 저택에 있던 베르메르의 ‘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1670~1671)는 같은 장소에서 세 차례 도난당한 오명을 안고 있다. 영화 ‘토머스 크라운 어페어’의 인상적인 장깝게도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쏟아지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지만).
미술품의 가격도 계속 뛰어 매력적이다.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오른 미술품 값은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 일본의 수요가 가세하며 고공행진했다. 세계 금융위기로 주춤했지만 미술품 시장은 최근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개의 습작’이 경매 사상 최고가인 1억4240만 달러에 낙찰됐다. 아트프라이스(art)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각각 22%와 47% 늘었다. 각국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시장에 유동성이 넘치는 것도 미술품 시장이 뜨거워진 한 요인이다. 티에르 에르망 아트프라이스 대표는 “미술품 시장은 배고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고픔을 채워줄 만한 제대로 된 음식은 부족하다. 미술품은 대표적인 비탄력재다. 수요가 늘어난다고 공급이 따라 늘지 않는다. 수집가가 선호하는 작품은 제한돼 있다. 대량 생산도 어렵다. 그 때문에 그림 소장자가 파산(Default)하거나 사망(Death) 혹은 이혼(Divorce)할 때 좋은 미술품이 나온다는 ‘3D 법칙’이 적용된다.
물건이 부족하다 보니 장물도 꺼리지 않는다. 미술품 시장의 은밀하고 불투명한 거래 관행은 장물 거래를 부추긴다. 문서 없이 물나들기 쉬워 거래 과정을 추적하기도 힘들다. 암시장을 통해 몇 사람의 손을 거치 가격의 3~10% 선에서 팔린다는 게 미술계의 정설이다.
그 덕에 횡재도 한다. 미국 버지니아에 사는 한 여성은 2010년 벼룩시장에서 7달러를 주고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을 샀다. 2년 뒤 경매회사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51년 볼티모어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진품으로 확인됐다. 경매 호가만 7만5000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지하 세계의 화폐가 앞으로도 널리 유통될지는 알 수 없다. 미술품 도둑이 활개칠 여지가 줄고 있어서다. 미 연방수사국(FBI)와 각국의 전담 경찰 등 현대판 ‘모뉴먼트맨’을 자처하는 이들이 도둑의 뒤를 쫓고 있다. 여기에다 장물 목록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면서 대놓고 거래하기도 힘들어졌다. 도난 미술품 데이LR) 목록을 비롯해 FBI와 로스앤젤레스 경찰국 등이 ‘미술품 실종 신고 목록’을 공개하면서 훔친 물건을 처분하기가 어려워졌다. 실제 ALR 목록이 만들어진 뒤 2억 달러가량의 도난 미술품이 주인의 품으로 돌아왔다. 40년에 사라진 뒤 2005년 회수된 파블로 피카소의 ‘흰 옷을 입고 책을 읽는 여인’이 대표적인 예다.
명화-해바라기 반고흐 (0) | 2020.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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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작품들 (0) | 2020.06.19 |
<해바라기> 고흐
캔버스에 유화, 73X92㎝, 1888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은 아니지만 해바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해바라기를 좋아한내기로 한 자신의 방을 장식하기 위해 해바라기 머물렀던 프랑스 남부의 뜨거운 해를 닮은 해바라기를 그리면서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렘과 가슴 속에 불타오르는 열정을 담아 내었다.
런던 국립 미술관에 소장된 이 그림은 노란색 바탕에 14송이의 해바라기가 그려져 있다. 화면 전체에 노란빛이 가득하다. 노란 햇빛을잎들은 불꽃처럼 자유로운 몸짓으로 불타는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다.
이처럼 고흐는 태양을 닮은 황금빛 색채를 여러 점의 그림에 담아 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태양의 화가'라고 부른다.
우리는 고흐 특유의 굵고 자유로운 붓질과 열정적인 색채를 통해 화가의 뜨거운 가슴을 느낄 수 있고, 단순한 정물화가 아니라 화가의 영혼을 만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흐를 상징할 만큼 유명한 이 <해바라기>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참고 / 이정임, 천미령의 《명화 이야기》
Love Theme from "Sunflower"
영화 <해바라기>는 <비토리오 데시카>감독이 1970년에 만든 걸작이다. <소피아 로렌>과 <마르셀 마스트로얀니>가 전쟁으로 인하여 운명이 바뀐 남, 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의 인기여배우 <류드밀라 사베리에바>가 조연으로 나온다. 영화 <해바라기>는 비교적 건전한 멜로드라마(?) 임에도 불구하고, 1974년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하려하였으나, 정부에서 개봉을 불허하였다.
줄거리는 결혼하자마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져, 남편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를 전쟁터로 보낸 여인 지오반나(소피아 로렌). 소식한다. 하지만 안토니오가 소속된 군대에서 제대한 군인이 그가 죽음 직전에 눈 속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자, 지오반나는 남편이 살아있다고 믿고 멀고먼 땅 러시아까지 찾아간다.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까지 계속되는 그녀의 여행은 고달프기만 하다. 간신히 묻고 물어 모스크바 북쪽 변두리 지역에 이태리인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그녀가 지나가는 우크라이나의 들판에는 해바라기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윽고 그녀는 마아 여인의 집에서 남편 안토니오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마샤와 함께 살면서 아이까지 있는 처지다. 지오반나는 슬픔에 잠겨 그 집을 떠나 밀라노로 돌아온다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삶은현재의 평온한 삶과 과거의 열정적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이미 재혼을 한 지오반나와 재회한 안토니오는 말이 없다. 각자의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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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7월 27일..
오베르의 밀밭에서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가슴에 관통상을 입었지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왔다.
그리고 사흘뒤 7월29일,
빈센트 반 고흐는 세들어 살던 작은 방에서 37년의 짧은 인생을 마쳤다.
그는 평생토록 가난과 우울증 간질에 시달렸다.
살아 있으면서 그가 팔수 있었던 그림은 단 한점 뿐이었다...
고흐 사망 100년후 1990년 5월15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
고흐의 가쉐박사의 초상이 경매시장에 올랐다.
전세계의 거물급 화상들이 모두 모인 이날,
가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다.
고흐가 가쉐 박사에게서 동정을 얻은 것은 카이유 피사로 덕분이었다.
가쉐 박사를 모델로 그는 한 선량한 사람에게 느끼는 호의를 담은
뛰어난 초상화를 남겼다.
그러나 가쉐 박사도 고흐의 생활을 그리 오랫동안 책임질 수는 없었다
스헤브닝겐 해안의 전망
네덜란드출신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1882년 작품인
‘스헤브닝겐 해안의 전망’을 훔친 범인들이 징역 4년 6개월과 4년을 각각 받았다.
28일 BBC방송 인터넷판에 따르면 지난해 고흐의 작품이 소장돼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빈센트 반 고흐미술관에 침입해
‘스헤브닝겐 해안의 전망’과 ‘누에넨의 교회’를 훔쳤다 지난해
스페인과 암스테르담에서 각각 체포된 절도범
옥타브 두르햄판사는
“미술관측이 이 두 작품에 보험이 들어있지 않다며
180만 유로(약 25억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고흐의 작품은 돈이 문제가 아닌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취급해야 한다”며
미술관측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기각했다.
이들 범인들라지처럼 빠져나가
경찰들 사이에서는 ‘원숭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해바라기와 장미,그리고 다른 꽃들이 담긴 사발
고흐는 빨간색과 녹색의 대비를 기본으로 하고,
그 외에도 반복과 잔영을 통한 대비를 이용해서
전체적인 조화를 구축하는데 집중했다.
화면의 심도를 표현하기 보다는
캔버리스 봉게르]는
테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안드리스 봉게르는 테오의 처남이 되었음)
'꽃을 그린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화려하네.
하지만 몇몇 작품들은 화면의 깊이가 없어.
바로 그 점 때문에 그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네.'
이후, 고흐도 그 자신의 그림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색'이 확실히 나아지고 있다.'
이 시기 전후 고흐의 그림을 비교해 보는것도
또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생레미병원의 민들레와 나무둥치가 있는 풀밭
'파릇파릇
연보라빛의 소나무 둥치가 있고,
풀밭에는 민들레와 다른 하얀 꽃들이 있다.
작은 장받고 있는
풀밭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풍경 속의 다양한 리듬은 마치 본능처럼 고흐의 붓끝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그림 가득히 느껴지는 고요함은,
그가 경험한 순박한 시골의 자연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를르에서의 산책
고흐의 국적은 네덜란드이지만 만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1886~88년은 파리, 1888~90년은 아를르,
작의 길을 발견하고 있다.
이 작품은 1888년 아를르에서 그린 것으로,
그 무렵 고흐는 고갱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화면의 구도는 아래쪽이 잘리어 있는 전경의 큼직한 인물,
구러진 길 여인들의 모습 등에서
고갱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색조는 고갱과는 전혀 다르며,
색조에 한해 개성이 유감 없이 발휘되어 있다.
그는 색을 과장하여 다이나믹한 파스텔화적인 필치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 전체가 고흐 작품 특유의 고양되고
흥분된 듯한 표현의 강렬함에 넘쳐 있다.
집배원 룰랭
반 고흐는 1888년에 아를르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
그는 룰랭이라는 우편 배달부를 알게 되었다.
그는 그후에 고흐와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어
고흐의 서하고 있다.
그 사람은 집배원으로서 큰 얼굴에
턱수염을 기르고 있고 소크라테스를 닮았다.
당기와 같은 열렬한 공화주의자이며,
보통 남자보다는 흥미 있는 사나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 작품은 그 우편 배달부를 그린 단 하나의 작품이다.
고흐는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있던 2년 동안에
고도로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의해서
용트림 하는 듯한 강렬한 율동을 보이고 있다.
아를르의 여인-지누부인
반 고흐는 1888년 봄,
밝은 태양을 동경하여 파리로부터
남프랑스의 밝은 아를르로 옮겨 왔다.
그로 명작을 제작해 갔다.
고흐는 이 남프랑스에 공동 아틀리에를 만들어
파리의 친구를 모아 함께 제작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초청을 받아 그곳에 온 사람은 고갱 한사람뿐이었다.
그리하여 고갱과 2개월쯤 함께 살게 되는데
그 사이에 그려진 작품의 하나가 이 작품이다.
모델이 된 지누부인은 아를르의 역전에서
남편과 함께 카페를 경영하는 인물인데
그녀가 모델이 되어 달라는 청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알자,
그녀를 슬쩍 집에 초대하여 무턱대고 그렸다고 한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고갱은 그녀를 향해
[당뚜렷하게 잡고 있어
고갱의 종합주의의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 고흐의 침실
이 그림이 그려진 1888년은 아를르에 와서 고갱이 함께 생활하며
제작 활동을 하던 해였다.
공동 생활은 이윽고 정신병의 발작,
귀를 자르는 사건등 비극적인 종말로 끝나지만,
그런 에서
새로 실내 장식을 하기 위해 침실을 데생했다고 쓰고 있다.
[침실 데생은 나에게 큰 기쁨을 준다.
평탄한 면을 만들면서 두텁게 칠한 붓
이것은 같은 해
침실 그림은 그 후에도 고흐의 마음을 끈 것 같다.
생 레미의 정신 병원에서도 침실의 그림을 두 장 그리고 있다.
자화상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의 그림으로서
그의 유서와
거의 단색으로 느껴질 정도의 청록 필선으로 그려진데다
붉은 수염과 밤색 머리카락에 둘러싸인 볼이 움푹 팬 고흐의 얼굴이
집요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마와 코에 냉정한 빛을 던지고,
그늘진 부분에 청색이나 녹색을 칠하고 청색과 갈색의 선을 넣고 있다.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는 눈과 꼭 다문 입술에
고흐의 정신이 역력히 나타나 았다.
이만
불안한 육체의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고흐는 이 냉철한 정신 또는 영혼이 충만한 속에 홀로 외로이 앉아서
귀를 기울여 무엇인가 마음으로 느끼려 하고 있다.
아를르의 햇볕
급속하게 쇠약해지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고흐는 아를르로 옮겼는데
그로부터 2년간이 이 화가의 생애의 절정이었다.
격렬하고 극도로 표출적이 그 양식도 거의 완성의 영역에 달했으며
마지막 해에는 색체 분할과 선묘로 인상주의 기법과
그가 그때 조화점에 이르렀다.
고흐의 자연에 대한 접근 방법의 특이성은
이미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 생성과 생동의 신비를 둘러 싸고 고호의 비전은 형성된다.
고흐의 풍경화에서는 그러한 비전의 형성에 도움이 되는
기본적인 형태를 제공하는 것으로서만
자연 속의 여러 대상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를 알 수 있다.
이 해 여름,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원에 협죽도가 무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자랑스럽게 적고 있다.
라 크로의 수확
초여름은 보리를 수확하는 계절이다.
고흐는 끝없이 펼쳐진 아를르의 들판에 나가
렘브란트의 제자 살로몬 코닝크의 작품을 연상하거나 하면서
이 보리가 익는 계절의 광경을 그렸다.
전경과 중경
또한 왼쪽 저 안쪽의 푸른 언덕에는 몽마쥐르의 폐허가 보인다.
이러한 넓은 공간이 생울타리나 길,
나무 등에 의해등이 그려져 있다.
화면 중앙의 짐차와 멀리 보이는 산이나 언덕의 푸른색이 서로 손짓하며,
중경 오른쪽의 손수레와 왼쪽 끝의 서명의 짙은 오렌지색이
대비를 이루게끔,
색채상의 배려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계류
고흐의 그림 가운데서 가장 빼어나고 또 널리 알려져 있는 몇 작품은
아를르에서 몇 마일 떨어진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보나타나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고흐의 작품은
정신적 평형을 잃고 병원에 갇혀 있을 동안에
그려진 것들이 오히려 차분하고 정리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예컨대 잉크로 세심하게 그린
요양원 뜰의 데생이나 치료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화가 그러하다.
이러한 작품의
이 그림은 1889년의 어느날,
차디찬 계절풍이 부는 속에서 하루 동안에 완성된 것이다.
고흐의 특성인 자르는 듯한 터치의 기복을 이루는 선으로 표현된
바위, 길, 냇물 등이 화면 전체에 일관된 운동감을 거부하고 있다.
별들이 반짝이는 밤
이 작품은 밤 풍경을 그린 것으로,
장소는 아를르가 아니라 생 레미이다.
레인다.
왼쪽 전경에 높이 솟아 있는 삼나무와 중경 중앙에 있는
교회의 첨탑과 대조가 교묘하게 넓은 공간을 나타내며,
그 건너편에 멀리 언덕이 보인다.
하늘에는 달과 수많은 별들이 거대한 빛을 발하고 있고
같은 장소를 다시 멀리 떨어진 높은 언덕에서 데생한 연필 데생화가 이
<별들이 반짝이는 밤>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전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브레멘 미술관에서 분실되고 말았다.
해바라기
반 고흐는 1888년 여름 아를르에서 몇 점의 해바라기를 그렸는데,
꽃송이가 3개인 것, 12개인 것, 14개인 것 등이 있다.
그는 고갱과 함께 쓰게 될 자신의 아틀리에을
해바라기의 그림만으로 장식하려고 한다고
그 무렵의 한 편지에 쓰고 있다.
몇몇 해바라기 그림 중에서
꽃봉오리인 채로 있거나 활짝 피었거나 하는 차이는 있지만
꽃송이만은 분명히 15송이이다.
그는 아무래도 14송이의 해바라기 그림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해바라기 그림의 복사판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이 반년 동안에 7점의 해바라기 그림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어
반 고흐의 작품의 총 목록(1970년)에 의하면
이 그림은 겨울에 만들어진 복사판으로 되어 있다.
고흐의 집(노란집)
강렬한 푸름과 노랑으로 화면을 2등분하여
밝은 태양을 만끽하는 평화스러운 시골 마을의 인상을
설득력있게 나
고흐는 1888년 5월에 아를의 역 가까운
라마르틴 광장에 있는 노란 집을 빌려
동생 테오가 가구에 너무 비용이 들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까마귀떼가 나는 밀밭
아마도 빈곤한 탓이겠지만,
반 고흐는 큰 작품을 별로 그리지 않았다.
가로가 약 1미터나 되는 이그림은
이다.
밀밭 그림을 그는 오베르에서 2점을 그렸으며,
거의 같은 크기이지만, 길을 다루는 법,
무리져 나는 까마귀의 있고 없음 등에 차기아 있다.
물론 이 작품이 훨씬 우수하다.
즉 전원 속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건강과 회복력]을
그리려 한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까마귀들마저 이 구원이 없는 공간에서 날아가버리려고 한다.
실편백나무 : Cypress
[별들이 반짝이는 밤]과 같은 무렵,
반 고흐는 이 [실편백나무]를 그렸다.
남프랑스에는 소나무,실편백나무,올리브나무 따위가 많으며,
형태로 혹은 음험한 형태로 표현하는 일이 많았다.
여기서는 화면 전체에 유화 물감이 아주 두텁게 칠해지고,
전체적인 인상으로는 야경이라기 보다도 대낮의 광경에
초승들을 넣었다고 하는 느낌이 든다.
실편백나무의 짙은 녹색이 남프랑스의 한여름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며,
또 한편은 광적인 격정이라는 개성의 차가 있다.
이 작품외에도 실편백나무를 다룬 그림이 상당수 알려져 있는데
어느것이 잘된 작품인지 그 진가를 구분하기 힘들다.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보리밭
[건강을 위하여 뜰에서 제작을 하고,
꽃이 피는 것을 보기도 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바다와 같은 넓은 언덕을 향하여 펼쳐져 가는
이것도 어두운 폭풍 속에 있는 보리밭이다.
[저는 완전히 이 보리밭의 대작에 소모당하고 있습니다]라고
<까마귀떼가 나는 보리밭>만큼 불길해 보이지 않지만,
무서운 공백감은 불길 이상의 종언의 예고와도 같은 작품이다.
감자 먹는 사람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등잔불 밑에서 감자를 먹는 이 사람들이
접시에 가져가는 바로 그 손으로 감자를 수확했다는 사실이다.
이 그림은 육체 노동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음식을 벌었는가에 대해 말한다."
이 그림은 머리와 손,
구도에 대한 많은 습작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한푼의 돈도 벌지못하는 무능력자였고,
변변한 친구도 하나없이 마을사람들로 부터도 따돌림을 받았다.
그에게 남은것은 외로움과 그림뿐이었다.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어두웠던 그의 그림은 점점 밝아지기 시작한다.
색깔을 찾은 것이다.
점점 빛나기 시작한 그의 그림,
그리고 막 폭발할거 같은 그의 광기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아를에서 그 절정을 만난다.
아이리스(붓꽃)
[아이리스]는 아를 주민들의 비난을 피해 요양원에 와서
안정을 얻게 된 고흐의 푸근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원에서 제작했다.
고흐의 격렬한 감정은
정교하게 관찰한 실제 꽃의 느낌을 손상시키지 않고 있다.
도난 미술품 (0) | 2020.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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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해바라기 반고흐 (0) | 2020.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