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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은 네 것", 이 멋진 아빠와의 인터뷰  

            

                  

4년제 대학대신 미용학원 택한 딸… 억지 공부하느니 기술 배운다 선언
파마·염만 넘어지고 다쳐봐야 '진짜 인생'
'내 삶은 내 것' 우직하게 걸어가는 우리 딸, 고맙고 자랑스럽지요                   

아이고, 인터뷰라뇨. 하품하던 소, 웃다 사레 들려요몰려와 막 응원하잖아요. 으아~ 완전 당황했어요.

4년제 대학 대신 미용학원 택한 딸아이의 결단, 뭐, 쉬운 일은 아니었죠. 저희 부부도 처음엔 아주 황당했어요. 고3 시작된 지 며칠 안 됐는데, 이 녀석 할 얘기가 있다는 거예요. 영·수 학원 다녀봤자 성적 안 오르고, 공부엔 취미가 없으니 '듣보잡대' 간다고 학원비 날리느니 미용 기술 배우겠다는 겁니다. 가슴이 쿵 떨어지데요.

저희 부부 다 서울대 나왔거든요, 흐흐! 돌연변이 아니라면 머리가 그리 나쁘지 않을 거고, 1년 바짝 노력하면 수도권 대학은 못 가겠나 했던 건데, 덜컥 미용사가 되겠답니다. 황망하여 어쩔 줄 모르는데, 겁없는 아내, 대뜸 '일리 있는 소리네' 이럽니다. 중학교 선생이거든요. 공부 억지로 시켜 엇나가는 애 여 나온다고 행복한 거 아니라면서. 학원 가서 조느니 기술 익히는 게 낫다, 학벌 거품 꺼지면 기술 장인 우대할 날 온다, 희망을 주창하니 저 또한 '네 인생 네 것이다' 박수 쳐주었지요.

학교 파하는 대로 미용학원으로 달려가더군요. 2학기부터는 직업학교에 다녔어요. 인문계라도 학교에 적을 둔 채로 직업특성화고등학교에서 수업받을 수 있더라고요. 재미있어하느냐학원 다닐 때보다 생글생글하니 싫진 않은가 봐요. 문제는 손이에요. 파마다, 염색이다 해서 독한 약품 다루니 물집이 생기고 갈라집니다. 어려서 아토피를 앓았거든요. 어느 날 보니 양쪽 엄지 지문이 다 사라졌어요. 장갑 좀 끼고 하래도, 처음 배울 땐 손에 감각 익히는 게 중요하다며 고집을 피웁니다. 간만에 아버지 노릇도 했지요. 알음알음 알게 된 헤어숍 원장에게 딸아이 멘토링을 부탁했어요. 대충대충 해선 이 바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대학 안 가도 교양과 상식은 쌓아야 한다, 미용사라고 머리와 피부만 만져주는 게 아니다, 고객 고민 듣고 조언해줘야 진정한 서비스가 완성된다…. 아, 어느 길이든 쉬운 게 없더라고요.

말이 씨가 된 거였어요. 그 녀석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 삼아 모교에 놀러 간 적 있어요. 버들골이라고 널찍한 공원 있거든요. 풀밭에서 뛰놀고 김밥도 먹으면서 부부의 속물적 희망사항을 주입했죠. 여기가 학비도 싸고 캠퍼스 넓어서 좋더라, 엄마 아빠 때와 달리 요즘엔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애도 많이 온다더라…. 그러자 딸애가 두 눈을 빛내며 물어요. '그러니까 우리 식구 중 두 명이나 서울대 다닌 거야? 그럼 난 대학 안 가도 되겠네?'

                                               

아이가 딱 한 번 비상한 재주를 보인 적 있어요. 열한 살 때 포털에 카페를 만든 겁니다. 어디서 포토숍이란 걸 보고 배워서는 카페를 열었는데, 개설 두 달 만에 회원이 8000명을 넘었지요. 완전 대박이죠. 20대 대학생, 직장 여성들이 회원이고 초딩 딸내미가 시솝이니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걸려와요. 이으면 한국판 샌드버그 됐을 건데…. 울면서 회원들 강퇴시킨 뒤 아이 성격이 뾰족해졌어요. 시무룩해지고요. 자유로운 영혼을 학교 정규 프로세스에 가둬둔 셈이니. 수틀리면 '내 인생은 내 거야!' 악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니, 소원니다, 하하!

딸아이 수능시험 본 날 식구가 함께 63빌딩 갔어. 대학 안 갈 건데 시험은 왜 봤느냐 물었더니, 수험표 있으면 밥값 깎아주는 식당이 득시글하대요. 밥 먹다 말고는 복장 터지는 소릴 합니다. '아빠 말이 맞았어. 국영수 열심히 해서 대학 가는 게 제일 쉬운 길이었어.'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이 내 생각 남의 머리에 넣고, 남의 돈 내 주머니에 넣는 일이라더니, 욱하데요. 한편으론 안도했죠. 헤어든, 메이크업이든 파고들다 보면 선진 기술 욕심 날 테고, 공부의 필요성 절감할 거고요. 100세 시대에 서른은 청춘이니 나이 들어 대학 가도 꿀릴 거 없지요.

말은 이래도, 곧 있으면 교복 벗을 아이의 뒷모습 보니 울적합니다. 다른 내려가 직접 밥해주며 공부시킨 아빠도 있던데요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응원해주려고요. 자기 주도 학습은 못 했지만 자기 주도 인생 선언한 멋진 내 딸에게 둘도 없는 '백' 돼주려고요. 넘어지고 굴러서 무릎에 피도 나겠지만, 그래야 '인생' 아닌가요? 곱창 좋아하는 내 딸 정식 미용사 되면 소주잔 힘차게 부딪치며 '브라보!' 외칠 거예요. 그때는 '딱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협박하려고요. 검붉게 부르튼 너의 손 보고 아빠가 얼마나 울었는지 알려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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