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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글·사람 빌리지마라"… 이 집안의 자존심        

       

  -[사람을 기르는 집] - 청록파 시인 조지훈 집안


당대 명문의 수필 '지조론' 쓰고 독재와 싸운 제자 위해 헌시 바쳐
책장순서 알만큼 기억어리광 없이 자란 3남 1녀
"고상한 정신, 듬뿍 물려척(尺) 장신이었다. 가르마 없이 뒤로 쓸어 넘긴 장발에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느린 걸음으로 휘적휘적 걸어 다녔다. 시선은 언제나 먼 하늘에 두고 걸었다. 소매 끝을 슬쩍 걷어 올린 줄무늬 셔츠에 베레모를 쓰고 성북동 산길을 산책할 때면 대인 흘렀다. 자녀들은 "외모뿐 아니라 내면의 멋도 범인(凡人)이 흉내내기 어려운 깊이와 품격을 갖춘 분이었다"고 회고한다.

조지훈은 시인이자 논객이었고 지사였다. 당대 명문으로 꼽히는 수필 '지조론(志操論)'에 매서운 기개와 차가운 지성이 드러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자는 따를 수가 없다. 자기의 명리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어리광을 부려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 수필가로 활동하는 장남 조광렬씨는 "아버지는 가족이 아니라 제자들, 친구들, 시와 학문, 몸담았던 학교, 나아가서는 나라에 더 큰 사랑을 쏟으셨다"면서 "그럼에도 제가 본 가장 훌륭한 분이었고 가장 멋있는 분이었다"고 했다.

          1950년대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찍은 조지훈 집안의 가족사진. 시인(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내 김난희씨, 장남 광렬, 차남 학렬, 딸 혜경씨. 막내 조태열 차관만 빠졌다. /조지훈가 제공

1968년 48세에 세상을 뜬 시인은 3남 1녀를 두었다. 셋째 아들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은 자신을 이끌어준 최고의 스승으로 '아버지'를 꼽았다.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셔서 직접 훈육받은 기억은 많지 않지만 그 이름이 등대가 됐다"고 했다. "공직 생활 하면서 내가 조지훈 아들이라는 것만으로 '잘하셔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하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늘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말자고 다짐하며 살았다"고 했다.

성북동의 작은 한옥, 아버지는 늘 서재에 꼿꼿이 앉아 원고를 썼다. 조 차관은 "유교적 가풍에다 잔정을 표현하는 분이 아니라 막내라도 어리광을 부려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세상은 아버지를 기개 넘치고 호방한 대인으로만 기억하지만 두 달 전 가져온 성적표를 가져가는 개학날이면 '로 세심한 면도 있었다."

◇세 가지를 빌리지 마라

'지조론'은 가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지훈의 고향인 경북 영양군 주실(注室)마을은 한양 조씨들이 400년 가깝게 터를 잡고 살아온 집성촌. '검남(劍南)' 집안이라고도 불린다. '칼 같은 남인 집안'의 가풍 속에서 조지훈은 태어나고 성장했다. 노론에 밀려 벼슬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검남'이 택한 가훈이 '삼불차(三不借·세 가지를 빌리지 않는다)'. ①재불차(財不借):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재물을 빌리지 않고 ②문불차(文不借): 문장을 빌리지 않으며 ③인불차(人不借): 사람을 빌리지 않는다(양자를 들이지 않는다)는 것. 조태열 차관은 "삼불차는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집안의 자존심 같은 것"이라며 "양자 없이 적통을 계속 이어갔다는 건 끊임없이 인물이 배출됐다는 자부심의 표현일 것"이라고 했다.
1960년 5월 3일 '고대신문' 1면에 스승의 헌시가 실렸다.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다가 피를 흘린 제자들에게 바치는 조지훈 고려대 국문과 교수의 시였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늬들의 공을 온 겨레가 안다." 조 차관은 "4·19 세대가 가장 많이 감격하고 기억하는 시"라고 했다.

조광렬씨는 2007년에 출간한 책 '승무의 긴 여운, 지조의 큰 울림'에서 이렇게 썼다. "잔정 어린 살가운 추억과 통속적 재미, 재산은 남겨주시지 못했지만 그 대신 고상한 정신을 듬뿍 선물로 주신 아버지, 당신이 추구하는 것이 옳다면 왜 그것이 옳고 좋은가를 말씀 대신 몸소 몸으로 보여주신 아버지였다."

 

[이 집안의 보물은] 121편 실려 있는 '육필 시집'

          

조지훈이 만년필로 정서(正書)한 시를 묶은 '육필 시집'은 집안 가보가 됐다. 시인이 생전에 직접 노끈으로 묶었던 원고를 정리해 지난 2001년 출간됐다. 대표작 '승무'(사진)를 비롯해 조지훈의 시 121있다. 꼿꼿하고 힘 있는 서체에서 시인의 문기(文氣)가 느껴진다. 조태열 차관은 "붓글씨를 잘 쓰시는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 글씨는 썩 좋지 않아서 그런지 육필을 많이 남기지는 않으셨다"며 "두주불사였던 아버지는 술을 아무리 드셔도 새벽에  글을 쓰시곤 했다. 그 모습이 그립다"고 했다.

 2013.11.18 (조선)

 

[전통의 눈으로 본 이 집안 교육법]

 

修成淑德 施及子孫(수성숙덕 이급자손)
좋은 덕을 닦아 놓으면 그 덕이 자손에게 이어진다
-후한서 두융열전

 

어떻게 하면 아들딸을 건강하고 한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많은 부모들의 한결같은 고민이다. 교육을 잘 시키고, 재산을 넉넉하게 남겨주면 될 것만 같아서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걸고 하나라도 더 주려고 애쓴다. 하지만 애쓴 보람과는 딴판이기 쉽다. 2000년 전 사람은 말한다. 스스로 훌륭한 덕을 갖춘 사람이 돼라! 자신이 덕망을 갖추고 남에게 베풀면 그 덕이 자연스럽게 자식에게 옮겨간다. 자식의 미래를 위한 치밀한 기획에 앞서 스스로 좋은 사람이 돼라! 자식은 그것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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